[4050글쓰기] 색소폰, 텃밭, 수영... 하루 루틴 지키는 70세 엄마의 속내
[4050글쓰기] 색소폰, 텃밭, 수영... 하루 루틴 지키는 70세 엄마의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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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를 살아가는 4050 시민기자가 취향과 고민을 나눕니다. <기자말>
[최은영 기자]
오랜만에 엄마와 보내는 평일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집을 정리해놓고 8시 반에 나가는 엄마를 따라 나섰다. 색소폰 레슨 겸 합주가 있는 날이었다. 엄마는 63세에 처음 색소폰을 들었다. 그때의 엄마는 악보는커녕 오선지가 5개의 선이라는 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나는 피아노 강사를 오래했지만 어린이집 안 가는 아이를 돌보느라 멀리 있는 엄마의 악보까지 챙길 시간이 없었다. 체구도, 손도 작은 엄마가 남성 연주자도 있는 합주단에서 얼마나 할까 싶었는데 직접 보니 엄마는 열다섯 명 중에서 상위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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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는 시간이 있었다. 음정과 박자를 한번도 안 틀리고 끝까지 간 사람은 우리 엄마 포함 세명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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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가도 깔끔한 엄마 집 외출 전에 집을 정리해놓아야 마음이 편하다는 엄마
ⓒ 최은영
엄마가 합주단 상위권인 이유
합주가 끝나고 파산면책
농막이 있는 텃밭으로 향했다. 옆동 사는 이모와 함께 일군 텃밭이다. 이모가 오기 전까지 엄마는 악기 연습을 했다. 나는 모르는 곡이지만 피치가 안 맞는 건 내게 잘 들렸다. '방금 거기 음 내려갔어'라고 말하면 엄마는 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니는 악보도 없이 으찌 그리 아냐. 어릴 때 음악 가르쳐놓길 잘했네" 하며 신기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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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힌트로 여기면서 악보에 체크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왜 합주단 상위권에 올라갔는지 알 거 같았다.
이모가 챙겨온 보리밥에 취나물, 상추, 이름 모를 나물을 한아름 뜯어다 비볐다. 셋이 머리를 맞대고 양푼을 뚫을 기세로 긁어먹었다. 내 생애 가장 맛있는 비빔밥이었다. 엄마는 다 먹자마자 일어나 잡초를 뽑고 물을 주었다. 엄마는 물을 보험설계사 FC
줄 때마다 시간을 생각한다고 했다.
잎이 올라오면 며칠, 꽃이 피면 며칠, 열매가 맺히면 또 며칠, 그런 식이다. 식물은 답이 없는 시간을 꾸준히 겪고서야 뭐가 되는 법이라고 했다. 식물만 그럴까.
규칙은 삶의 외벽
밭일을 끝내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은 엄마가 30년 가까이 해온 운동이다. 나는 2년농협 대학생 대출
반 정도 됐다. 그날 처음으로 엄마와 같이 수영장을 들어가봤다. 내가 10바퀴를 왕복하고 나서 레일에 매달려 쉴 때, 엄마는 15바퀴를 채웠다. 나는 도저히 엄마를 쫓아갈 수 없었다.
숨을 얕게 쉬면 몸은 가라앉고, 너무 빨리 쉬면 방향을 잃는다. 엄마는 늘 일정한 박자로 수영을 한다. 튀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는다. 그게 힘이라고 했다부동산담보대출절차
. 엄마는 루틴을 사랑한다. 연습하고, 뽑고, 수영하고, 돌아오는 삶, 이 모든 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정이 아니다. 그저 규칙같은 일상이다.
규칙은 삶의 외벽이고, 반복은 외로움의 틈을 막아주는 실리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연속극이 잘못했네
집에 돌아오니 오후 6시가 조금 넘었다. 엄마는 소파에 통신신용불량자핸드폰개통
털썩 앉았다. 순간 너무 조용해서 거실의 벽시계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암 수술 후 정정하던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신 지 1년이 조금 지났다. 아빠는 집에서 책 읽으며 조용히 보내는 걸 좋아했다.
바깥 활동이 많은 엄마는 집에 와서 아빠에게 온갖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들깨가 너무 잘 자란다는 둥, 고양이 한마리가 우리 밭인천빌라대출
마루 밑을 집으로 삼았다는 둥. 어느날은 엄마가 괜히 시비를 걸어도 아빠는 그저 "허허, 우리 길석이 오늘은 화났네" 하며 모든 이야기를 길게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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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잠드신 잔디장 위를 쓰다듬는 엄마 엄마 집과 아빠 잔디장 묘가 가까워서 다행이다
ⓒ 최은영
"그땐 몰랐는데, 내가 말할 사람 하나 있었던 게 그렇게 큰일인 줄 이제야 알겠더라."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연속극이 딱 시작하는 시간에 들어오면 외롭지 않단다. 그런데 오늘처럼 애매한 시간에 들어오면 눈물이 먼저 나온단다. 나는 장난처럼 말했다.
"연속극이 잘못했네. 왜 그 시간 하나 못 맞춰서 우리 길석님을 울리고 그래.""그러네. 앞으로 연속극을 좀 혼내줘야겠네."
물기어린 눈으로 엄마가 날 보며 배시시 웃더니 리모컨을 집었다. 화면이 켜지고 홈쇼핑의 요란한 음악이 들렸다. 텃밭의 흙먼지도, 수영장의 물기도, 색소폰의 숨소리도 다 그 안으로 녹아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되도록 저녁 6시쯤에 엄마에게 전화한다. 혹시 일찍 들어왔을까봐, 그래서 혼자 소파에서 눈물 흘리고 있을까 봐 그렇다. 엄마는 늘 밝게 전화를 받으신다. 오가는 소소한 말들 속에서 엄마는 다시 세상의 중심이 된다.
텃밭과 수영장, 합주와 연속극 사이에서 지켜낸 엄마의 리듬에 내가 닿을 수 있다는 게 이토록 다정한 기적이라는 걸 요즘에서야 알겠다.
《 group 》 4050글쓰기 : https://omn.kr/group/4050_writer
동시대를 살아가는 4050 시민기자가 취향과 고민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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