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우연? 남도 안중근 동상은 동경 126도(하얼빈 역)에 서 있다. [광주전남독립운동 현장50]
[23] 우연? 남도 안중근 동상은 동경 126도(하얼빈 역)에 서 있다. [광주전남독립운동 현장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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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중외공원 안중근 동상. 사진작가 김덕일 제공
광주 전남지역의 안중근 동상은 저마다 내력과 유일한 독특성을 지니고 있다. 전남 함평 동상은 전국에 하나 뿐인 '대한의군 대장 안중근 장군' 동상이다. 광주 중외공원에 우뚝 선 동상은 광복 50주년 기념동상이자 전국에서 유일한 총을 든 동상이다.
여기에 장흥 정남진에 세워진 동상은 우리나라 안 의사 동상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하며 통일의 꿈을 안고 있다.
이들 동상은 모두 동경 126도에 위치한데다, 안 의사 의거 현장인 하얼빈과 같은 경도에 자리하고 있다. 남도 땅 3곳의 테마 안 의사 동상을 찾아간다.
#함평, 순국 100주년 맞아 중장서 대장으로아르바이트월차
전남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대한의군 대장 안중근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다. 안중근 의사는 연해주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단지동맹을 결성하고, 1910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안중근은 재판정에서 "나는 의병의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을 하저렴한 중고차
얼빈에서 해서 이토를 죽인 것으로 결코 개인으로서 한 것이 아니다.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결행한 것이기 때문에 살인을 한 피고인으로 이곳에서 취조를 받는 것은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안 의사는 또 "나는 개인적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의병으로서 한 것이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서 포로가 되어 여기에 와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수능시험고사장
문에 나의 생각으로는 나를 처분하는 데는 국제공법, 만국공법에 의해 처분되기를 희망한다."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왜 함평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대한의군 대장 안중근 장군' 동상이 세워졌을까?
지난 2010년 18대 국회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안 의사의 계급을 대한의군 '참모중장'에서 대한의군 '대장'으적금 이자 계산기
로 특진시키는 국회청원을 추진했다. 이에 맞춰 함평군은 신광면에 복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앞에 대장으로 특진시킨 안중근 장군의 동상을 세웠다.
기단을 포함한 높이 4.3m에 폭 4.1m 규모로 청동으로 제작됐다. 기단에는 1909년 단지동맹회 결성 후 왼손 무명지를 잘라 '대한독립'이라고 쓴 태극기와 손바닥 도장, '안중근 장군'이라소득증비서류
는 글자가 함께 새겨져 있다.
함평 안중근 장군 동상.
안중근 장군 동상 앞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대한의군 대장 안중근 장군안중근은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 1905년기업파산신청
27세 때 을사5조약이 체결된 소식을 듣고 상해로 건너가 일제의 불법 침략을 세계에 알렸으며, 이듬해 돈의학교와 삼흥학교를 세워 구국영재 양성에 힘을 쏟았다.
1908년 7월에는 의병 300여명을 모아 대한의군을 조직하여 함경도 육진, 경흥 등지에서 일본 군·경과 교전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듬해 초봄 연해주에서 12인단지회를 결성 태극기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에 왼손 무명지 첫 관절을 절단하여 선혈로 대한독립 이라 쓰고 조국독립에 헌신하기로 혈맹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하얼빈역에서 동양평화의 교란자인 이등박문을 사살하였다. 안중근은 재판에서 "나는 개인자격이 아닌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적의 괴수 이등박문을 총살 응징한 것이다." 라고원가계
일제의 동양 침략 야욕을 폭로한 후 사형선고를 받고 1910년 3월 26일 오전 10 향년 31세로 순국하였다.
안중근 장군 순국 100주기를 맞아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153명은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의 직위를 "대한의군 대장 안중근 장군"으로 특진시키는 국회청원 추인서에 서명하였다.
함평군과 안중근평자동차담보대출서류
화재단청년아카데미는 장군 순국 100주년 기일에 전국 최초로 대한의군 대장 안중근 장군 동상을 여기에 세우다.2010년 3월 26일'
중외공원 안중근 동상. 사진작가 김덕일 제공
#광주 중외공원 광복 50주년 안중근유한책임대출제도
동상
광주·전남에 건립된 최초의 안중근 동상은 광복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95년 광주 운암동 중외공원에 건립한 동상이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일제잔재 청산 및 항일 열사를 기리는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광주에서도 곡성출신인 안학선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안중근 동상 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돼 안중근 의사 동상 건립에 나서게 된다. 그런데 예산이 부족하자 1987년 광주공원에서 중외공원으로 이전한 안중근의사 숭모비를 내리고 그 기단 위에 동상을 올리게 된다.
1995년 중외공원에 건립된 안중근 동상은 조각가인 전남대학교 김대길 교수가 권총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제작했다. 권총을 든 안중근 동상은 전국에서 유일하다. 조각상의 글씨 '안중근의사상'은 서예가 장전 하남호 선생이 새겼다.
#안중근 재판과 순국 현장은 왜 다롄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 수감 중 수많은 붓글씨와 동양평화론을 저술하는 한편, 재판 투쟁을 벌였다. 안중근은 왜 러시아 조차지 하얼빈에서 일본 식민지 격인 다롄으로 끌려갔을까. 또 청국 영토에서, 러시아 관할지에서,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사건인데, 왜 일본이 재판을 했을까.
1909년 10월26일 거사 후 체포된 안중근 일행은 11월1일까지 일본 영사관에서 조사를 받고, 다롄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으로 넘겨졌다. 그는 하얼빈역을 출발, 창춘-선양-다롄으로 이어지는 남만주 철길을 달렸다. 11월3일 다롄에 도착했다. 안중근은 1909년 11월3일부터 1910년 3월26일까지 144일 동안 뤼순감옥 제3동 9호방에 수감됐다가 순국했다.
러시아는 이토 사건과 관련, 모두 15명을 체포, 일본에 넘겼다. 일제는 이들 중 ▲안중근(살인)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살인예비) ▲정대호, 김성옥, 김여수, 김형재, 탁공규 (살인봉조) 등 9명을 다롄으로 데려와 기소했다.
하얼빈은 1896년 러·청 밀약에 따라 동청철도의 부속지로 사실상 러시아 식민지였다. 청이 간섭할 수 없는 러시아 치외법권 지역이다. 안중근은 거사 후 러시아 헌병대에서 신문을 받았다.
그런데, 대한제국과 청이 1899년 9월 체결한 '통상조약 5조'에 따르면 '청 영토 내 한인에게는 한국 법을 적용한다'고 명시, 대한제국의 영사재판권을 인정했다. 거사단의 재판권을 청과 러시아가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일본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제2차 일한 협약·외교권 박탈)을 근거로 러시아에 신병 인도를 요구했다. 협약에는 '대한제국 이외에서의 한인의 보호는 일본 관헌이 한다'고 돼 있다.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가 한인인 안중근의 신병을 관할한다는 것.
일본은 또 1908년 10월 제정된 법률 52조 제3항 '만주 영사관의 관할 사건은 외교상 필요하다면 외무대신의 명령으로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 이송할 수 있다'는 조항을 들어 거사단을 다롄으로 이송시켰다. 관동도독부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1905년 러시아의 조차지인 다롄 등 요동반도를 인수한 후 만든 조차지 행정기구였다.
안중근 일행의 이송에는 만주를 침탈한 러시아·일본의 불평등 국제조약과 식민지로 전락한 약소국 대한제국의 슬픈 현실이 숨어 있다.
정남진 안중근 동상.
# 정남진 장흥 126타워 광장 안중근 동상
한반도의 정남진, 장흥군 관산읍 정남진해안로 '장흥 126타워' 광장에도 안 의사 동상이 서 있다. 예전에는 정남진 전망대로 불리던 곳이었는데, 리모델링 후 통일을 테마로 한 126타워로 변신했다.
이 타워는 3층 화해의 바람, 4층 평화의 날, 5층 통일 더 큰 기회, 7층 통일기차의 꿈 등 각 층마다 다양한 테마의 통일 이야기를 담고 있다. 타워 명칭은 126은 이곳이 동경 126도에서 가져왔다. 정남진은 광화문에서 정남쪽을 의미하는데, 정남진 126도 축선에는 북한 중강진을 거쳐 하벌빈으로 연결돼 있다.
즉 장흥 땅이 통일의 시작점이라는 점이다. 실상 안중근은 거의 유일하게 남북 모두에게 존경받는 항일운동가이다. 그래서 늘 유해 확인을 위한 발굴 작업은 남북공동으로 추진해왔다. 안중근 동상과 126축선은 통일을 한 아름 담고 있다.
126타워 입구에 세워진 안 의사 동상은 순국 100주년인 지난 2010년 장흥 죽산안씨 문중의 한 독지가의 제안에 따라 추진, 2011년 7월 건립됐다. 국내에서는 다소 이채로운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안 의사를 형상했다. 정남진 인근 회령진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취임했던 역사적 공간이다.
남쪽 바다 정남진에 서 있는 안중근. 그는 한반도 통일의 꿈이다.
/ 이건상 기자 [email protected]
함평동상 : 함평군 신광면 함정리광주동상 : 광주시 북구 운암동 164-4번지장흥동상 : 장흥군 관산읍 정남진 해안로 126타워